그렇다면 여기서 차별 문제가 대두될 수 있다
.대구변호사 언론인이 다른 직군과 다른 트레이닝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대한민국의 시민 중 한 사람이다. 국가 안보를 다루는 전문적인 공직자는 아니라는 소리다. 그런데 언론인은 노동신문을 볼 수 있고 국민은 못 보게 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 “언론은 볼 수 있고 국민은 못 보게 하는 건 국민을 판단력 없는 존재로 여기는 것 아닌가”라는 이 대통령의 지적은 타당한 면이 있다. 대한민국 국민의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 등 언론의 자유를 온전히 보장한다면, 당연히 북한 매체에 대한 접근이 차단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뭔가 석연치 않다. 이 대통령의 발언을 무조건 환영하긴 어렵다. 그의 발언은 ‘원론적으로’ 맞지만 ‘현실적으로’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지시로 통일부가 추진하고 국정원이 손을 뗀다면 노동신문의 국내 접속은 곧 가능해지겠지만,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은 지금부터 시작일 수밖에 없다. 여기서 잠시, 연말을 맞이하여 독자 여러분께 영화 한 편을 소개해 드리고 싶다. 바로 ‘래리 플린트’(1996)다. 래리 플린트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아마데우스’ 등으로 명성을 떨친 체코 출신의 거장 밀로시 포르만 감독의 영화다. 그는 미국 역사상 가장 문제적인 ‘언론인’의 투쟁을 집중적으로 묘사함으로써 표현의 자유와 국가 권력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