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범인의 자백만이 유일한 증거일 때도 있다.
.의료전문변호사 2020년 11월2일, 화성 연쇄살인사건 용의자인 이춘재가 법정에 나와 자신이 진범이 맞다고 인정했다. “예, 맞습니다.” 무미건조한 이 다섯 글자로 지난 20년, 꼬박 7315일 동안 옥살이를 했던 윤성여씨가 누명을 벗었다. 집에서 자고 있던 중학교 1학년 여학생을 목 졸라 죽이고 강간한 일명 ‘8차 사건’ 살인범으로 몰린 지 32년 만이었다. 이미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이기에 이춘재는 굳이 자백할 이유가 없었다. 현장에서 나온 용의자의 체모도 DNA가 손상돼 감정이 불가능했다. 오직 이춘재의 자백만이 유일한 증거인 상황에서 그의 입을 열게 한 건 프로파일러였다. 프로파일러 아홉 명은 아홉 차례에 걸쳐 이춘재를 설득했다. 만약 이춘재의 자백이 없었다면 윤성여씨를 고문했던 경찰관들이 여전히 ‘나는 윤씨가 진범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고 다녔을 수도 있다. 그랬다면 유가족 마음속에 남은 응어리도 완전히 풀리지 않았을 것이다. 이 사건 하나만으로도 프로파일러의 존재 가치는 입증한 셈이다. 이제는 경찰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프로파일러’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안다. 하지만 대중 속 인지도와 달리 1기 프로파일러가 걸어온 길은 녹록지 않았다. 사실 공채 프로파일러의 시작부터 쉽지 않은 일이었다. 2013년 경기남부경찰청 범죄분석팀을 나오면서 프로파일링 업무를 떠난 공채 1기 출신 고준채 치안정책연구소 연구관은 당시 ‘과학수사’ 자체가 경찰 조직 내부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고 말한다. “과학수사는 형사과라는 큰집의 서자예요. 경찰 안에서 일하는 경찰 조직 구성원이라는 인식이 전혀 없었나 봐요. ‘외판원’ 소리를 들을 정도였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