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것도 잠깐이었고요. 국장이
.민사소송절차 의심의 눈초리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공채 1기 15명 중 12명이 여성이었다. “저도 헌병대 출신이지만 군대나 경찰 조직에서는 특유의 남성 문화가 남아 있었어요. 갓 대학원을 졸업한 여성, 그것도 경찰보다는 프로파일러를 꿈꾸며 공무원 조직에 들어온 여성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조직도 난감했을 거예요.” 현장에 출동한 백승경은 말진 기자로 오해받아 현장 출입을 거부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공채 1기를 뽑고 훈련시켰던 실무자도 고군분투했다. 1기가 채용될 당시 경찰청 과학수사센터에 새로 만들어진 범죄정보지원계 계장으로 부임했던 곽순기는 신참 프로파일러를 경찰 조직에 안착시키기 위해 안팎으로 노력했다. “잘될 거라는 생각보다는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죠. 저도 이 친구들을 가르쳐야 하니까 심리학 책을 전부 사와서 읽어보고 외국 서적도 읽어보고요. 청장은 아니어도 국장까지는 보고서가 올라가니까 두세 장, 아무리 길어도 세 장 안에서 요점 정리가 끝나도록 보고서 쓰는 법도 가르쳤어요.” 초창기 지방청으로 뿔뿔이 흩어진 프로파일러를 모아 주기적으로 세미나를 열고 서로 사건을 공유하는 합동 회의를 열도록 한 사람도 그였다. 곽순기는 프로파일링이 무슨 쓸모가 있냐며 무시하는 지방청 과학수사계장에게 전화를 걸어 어르고 때로는 강하게 지시하면서 1기의 방패막이가 되어주었다. 하지만 그도 상부의 지시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1기가 전국으로 발령 난 뒤에 ‘이렇게 한 명씩 떨어져 있으면 힘을 못 쓴다’는 의견이 하도 많아서 그해 말 네댓 명을 본청으로 불러 권일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