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원하여 봉쇄하기 위한 수단이었기 때문에
.항소심변호사 피고인 윤석열은 비상계엄 선포를 위한 실체적·절차적 요건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왜 비상계엄이 군을 통한 국회 무력화의 수단으로 선택되었을까? “군 통수권이 있는 대통령이라고 하더라도 일반적인 상황에서라면 국회를 봉쇄하라는 명령에 군이 순순히 따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내란(‘국헌문란 목적 폭동’)의 수단으로 기획되었기 때문에, 12·3 비상계엄이라는 조치는 애초 그 법적 요건을 지킬 수가 없었다. 형법 제91조 제2호의 국헌문란(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하여 전복 또는 그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은, ‘상당 기간’ 지속되어야 충족된다. 재판부는 ‘계엄과 군경 투입이 짧은 시간 마무리되었기에 국헌문란, 내란이 아니다’라는 윤석열의 주장도 부인한다. “윤석열은 계엄 해제 요구 의결이 임박하자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취지의 지시를 하면서까지 의결을 저지하려 했다.” 불법 계엄을 저지할 사실상 유일한 길인 국회 의결을 막은 상황, 국회 봉쇄를 푸는 시기도 따로 정해두지 않았다. “윤석열의 마음먹기에 따라 (비상계엄) 해제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경고성 계엄’ ‘호소형 계엄’이었다는 윤석열의 항변은 어떨까. 이 주장은 여론전의 무기가 될 수는 있어도, ‘국헌문란’과 ‘폭동’이 기준인 내란죄 요건을 심사하는 데에는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지는 쟁점이다. 선고 당일 낭독한 요지에는 이에 대한 판단이 없었다. 앞서 살핀 ‘성경-촛불 운운’과 겹쳐, 재판부가 윤석열의 이 주장을 인정했다는 비판도 일각에서는 나왔다.